연맹 연대기 · Awea

타락한 천사

다른 이들이 역병을 피해 달아날 때, 그들은 역병을 향해 나아간다.

서막

밤. 중세 도시에 역병이 퍼졌다.

오래된 수도원 깊숙한 곳에 거대한 임시 병원이 마련되었다. 무거운 석조 아치 아래 수십 명의 환자가 누워 있다. 촛불과 화로가 타오르고, 솥에서는 김이 피어나며, 들보에는 약초가 말라 간다. 긴 검은 옷과 까마귀 가면을 쓴 이들이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역병 의사들이다.

그들은 이미 도시의 다른 이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줄 안다.

환자를 분리하고, 도구를 불로 소독하며, 물과 천을 끓인다. 약을 섞고 상처를 씻으며, 증상을 기록하고 누가 누구와 접촉했는지 적는다.

그러자 사람들이 살아남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이 지식을 가르친 것은 그였다.

병원 한가운데에는 높은 돌 단상이 있다. 한때 수도원의 제단이 있던 자리다.

이제 그 위에는 타락한 천사가 서 있다.

그는 하늘의 신보다 지친 고대의 전사에 가깝다. 낡은 검은 옷, 오래된 상처의 흔적, 거대한 검은 날개. 일부 깃털은 타 버렸고 곳곳에 검은 깃대가 드러나 있다. 무겁고 불완전한 날개는 그가 실제로 불길을 통과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곁에는 충직한 까마귀가 있다.

크고 거의 석탄처럼 검다. 지금은 펼친 책과 약병, 수술 도구들 사이, 돌 탁자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의사들은 까마귀가 어디든 천사와 함께한다는 것을 안다.

감염된 도시 위를 날며 새로운 발병 지점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언제나 주인에게 돌아온다.

제자들 사이에는 이미 이런 믿음이 생겼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 위에 검은 까마귀가 나타나면, 스승이 이미 그곳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사에게 그것은 징조가 아니다.

그저 오래된 친구일 뿐이다.

그의 앞 돌 탁자에는 역병에 걸린 남자가 누워 있다.

천사는 설교하지 않는다.

가르친다.

환자를 살피는 법, 감염된 상처를 처치하는 법, 확인해야 할 징후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보여 준다.

몇몇 의사가 바로 곁에 서 있다.

한 명은 그를 돕는다.

다른 한 명은 도구를 든다.

세 번째는 거대한 필사본에 모든 말을 빠르게 적는다.

까마귀는 펼친 책장 위를 태연하게 걷는다.

누구도 쫓아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 단상 주위에 모인 것은 제자들만이 아니다.

도시의 다른 지역에서 의사들이 찾아왔다. 아직 가면이 없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환자들 사이에 서서 죽을 운명이라 여겼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본다.

한 사람씩 다가온다.

그리고 천사가 한 번도 명령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다.

첫 번째 의사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어 두 번째도.

이어 세 번째도.

한 의사가 까마귀 가면을 벗어 스승 앞의 돌 위에 놓는다.

다른 이들도 따라 한다.

검은 날개 기사단의 의사들이 타락한 천사 앞에 까마귀 가면을 놓는다

천사 앞 바닥에 검은 가면들이 차츰 원을 이룬다.

그렇게 첫 번째 맹세가 태어난다.

그들은 전해 받은 지식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다음 사람에게 전하겠다고.

다른 이들이 달아나는 곳으로 가겠다고.

출신과 신앙, 권력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스승이 곁에 없을 때에도 스승의 길을 따르겠다고.

천사는 말이 없다.

그는 기사단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단은 그의 주위에서 스스로 만들어지고 있다.

수도원 벽의 타락한 천사와 까마귀 그림

무릎 꿇은 의사들 뒤에서 한 제자가 이미 오래된 수도원 벽에 숯으로 새 표식을 그린다. 거대한 검은 날개다.

그 옆에 다른 제자가 작은 까마귀 그림자를 더한다.

누군가는 맹세의 말을 책에 옮기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새 형제들에게 똑같은 까마귀 가면을 나눠 준다.

그 너머 거대한 병원에서는 일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환자를 구한다.

누군가는 배운다.

또 다른 이들은 뒤늦게 온 사람들에게 이미 가르치고 있다.

지식은 천사의 손을 빌리지 않고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바로 그것이 이 순간을 진정으로 의미 있게 만든다.

그는 몇 사람을 가르쳤다.

이제 그 사람들이 수백 명을 가르칠 수 있다.

천사는 앞에 무릎 꿇은 의사들을 바라본다.

일어나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다.

자신은 성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까마귀는 그저 까마귀라고.

자신의 지식은 계시가 아니라고.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까마귀가 탁자에서 날아올라 그의 어깨에 앉는다.

아래에서 수십 명이 고개를 든다.

그들 앞에 천사의 검은 날개, 어깨 위 검은 까마귀, 자신들이 쓴 가면의 긴 부리가 한꺼번에 놓인다.

아마 바로 그날 밤, 그들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검은 날개 기사단이라 불렀을 것이다.

지금은 죽어 가는 도시 한가운데 오래된 수도원에 모인 수십 명의 의사일 뿐이다.

언젠가 먼 왕국들에도 자신들의 병원이 들어서리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그들의 표식 앞에서 도시의 문이 열리리라는 것을.

왕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리라는 것을.

그들의 책이 금보다 귀해지리라는 것을.

지금 그들이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다른 이들이 역병을 피해 달아날 때 —
그들은 역병을 향해 나아간다.

까마귀와 함께한 타락한 천사